일본 풋살의 전설 이나바 코타로 "일본의 풋살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움직였기에 강해 질 수 있었다."

2023. 6. 21. 00:25해외풋살

코로나19 유행이 시작 되기 전까지 6월의 시작은 일본, 고베에서 진행되던 풋살 대회로 시작하던 기억이 남아있다.
하지만, 국경이 닫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2년 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본에서의 풋살로6월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6월 3일부터 이틀간 일본, 후쿠이에서 진행되는 아시아 풋살 여자 클럽대회에 서울은평FS위민이라는 팀으로 참가하게 되면서
이전과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1년을 맞이 하게 된다.
새로운 장소에서 시작하는 만큼 새로운 만남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와 열차 그리고 합동연습까지 오랜 시간 대회 장소로 이동을 하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동안 하루가 지나고,  첫 아침을 맞이 하며 대회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동안 낮익은 얼굴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나바 코타로 2000~2010년대 일본 풋살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선수 중 한 명인 그는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일본 풋살 이나바 코타로? 그는 누구인가?

 
어릴때 부터 축구를 시작한 그는 지역 내 유명 고등학교 축구부까지 활동을 이어갔지만, 대학교 부터 아니 고교 축구부를 은퇴한 이후부터 보통 선수와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당시 축구부를 은퇴하면서 팀 내에서 친했던 선수들과 풋살팀을 만들어서 대회에 참가한 것이 그의 풋살과의 첫 인연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실외 풋살 대회에서 실내 풋살화를 가져와서 당시 팀 주장(기타하라 와타루 / 전 나고야 오션스)에 혼나며 그의 친구(스가 다케히로 / 현 일본여자 풋살대표 감독)와 주변의 스포츠 매장에서 실외 풋살화를 사러 갔던 에피소드도 남아있다.
 
그 팀 이름은 [숲속의 곰/森のくまさん] 이후 대학교에 진학하고도 축구팀보다는 친한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었던 풋살팀에 활동을 집중하게 되었다. 이후 그가 활동하면서 점차 풋살계에서도 주목을 하게 되었으며 2004년 당시 만21세의 나이로 최연소 풋살 국가대표로 활동하게 된다이 대회에서 일본풋살대표는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오랜만에 FIFA풋살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브라질에서 열린 2008년 FIFA 풋살월드컵 이나바 코타로
태국에서 열린 2012년 FIFA 풋살월드컵 이나바 코타로, 미우라
2007년 바르드랄 우라야스 소속 이나바 코타로

이를 바탕으로 클럽 팀에서도 간토리그(파이어 폭스)에 이어 2007년 일본풋살리그(F리그)가 창설되면서 바르드랄 우라야스에 입단하며 인상을 남긴다. 물론 미겔 로드리고의 일본 풋살대표의 취임 이후 얼마 동안 대표에 선발되지 못하고, 큰 부상으로 인해 활동하지 못하는 좌절도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2012년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열린 AFC선수권을 시작으로 아시아 2연패를 기록하였으며, 태국에서 열린 FIFA 풋살월드컵에서는 5골을 기록하면서 지금도 일본풋살대표 중에서 월드컵 본선 최다 득점으로 남아있다.  
 

한국과의 짧은 인연

 
 2014년 베트남에서 개최된 AFC 풋살선수권에도 참가하면서 대한민국 풋살대표팀과 대전한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일본에 0:12로 패하면서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2014년 AFC풋살선수권 한국과의 경기

이후 일본은 결승에서 이란과 승부차기 까지 가는 접전 끝에 대회에 첫 출전한 GK세키구치의 선방으로 아시아 2연패를 달성한다. 

2014 아시아챔피언십 우승당시 모습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이는 한국 과의 첫번째 인연은 아니다.
2014 AFC 풋살 선수권으로 부터 12년을 뛰어 넘어
2002년11월, 부천에서 열린 "5회 국민생활체육협회 회장배 한,일 풋살 최강전"에서  "숲 속의 곰"으로 출전한 그는 결승에서 서울 강서팀에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 한다.
인터뷰 마지막에서 그 당시 이야기를 꺼내며, 한국 팀의 피지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지금 그는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

 

 
2012년 월드컵에서의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이후 이나바 코타로는 2013년 베트남의 타이 선 남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2015년 부터 2시즌 동안 고향 팀인 후가도르 스미다에 이적하면서 당시 감독이었던 친구와 한 팀에서 플레이 한 것은 물론 지금은 일본의 대표적인 피보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어린 선수였던 시미즈 카즈야에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2013년 타이 선 남 소속의 이나바 코타로
당시 스미다 소속의 이나바 코타로, 시미즈 카즈야

물론 친구에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해주고 싶다는 약속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동안 팀의 중심 선수로서 어린 선수 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YSCC 요코하마 소속의 이나바 코타로
이나바 코타로 은퇴경기
이나바 코타로의 은퇴경기에서 그가 소속된 유니폼이 걸려있는 모습

이후 F리그에 2부리그가 만들어지고 처음 참가한 YSCC요코하마에 이적한 그는 마지막 시즌에 팀의 2부리그 우승 및 1부리그 승격을 이끌고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은퇴경기에서 선수시절 함께 했던 동료들과 마지막 땀을 흘리고 선수로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F리그 해설을 맡고있는 이나바 코타로

F리그 중계 해설을 담당하면서 활발한 분위기로 경기중계를 이끌어가던 그는, 2021년 일본 최초로 "일본축구협회 풋살보급 담당코치"를 맡게 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축구와 풋살을 같이 플레이 하며, 풋살의 장점을 활용하여 어린 선수들이 플레이를 하는데 도움을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 그는 축구에서 풋살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풋살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이나바 코타로

“ 브라질, 스페인에서도 네이마르, 호나우딩요, 이니에스타, 사비 등 모두 풋살로부터 시작하여 축구로 이어진 예로서 이를 일본에서도 이 방식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풋살을 하면 기술이 좋아지면서 판단의 기회도 늘어나게 되는 점. 플레이어 수도 적고 코트도 좁기에 머리를 써야 하는 상황이 늘어납니다. 여기에  축구공 처럼 볼이 높이 튄다면 아이들이 공을 따라가며 밀집하고 부딪히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피지컬 싸움이 되지만, 풋살공 처럼 공이 튀지 않으면 발로 멈추고 앞을 보면서 우리 팀의 위치 및 상대의 위치를 보면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에 축구공과 풋살공을 같이 사용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풋살과 축구의 융합)“

 이와 함께 2013년 타이 선 남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리며 일본과 베트남 풋살의 가교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후쿠이 아시아 여자 풋살 클럽 대회에서도 베트남 타이 선 남 여자팀의 출전을 주선했으며 마지막까지 선수단과 함께하였다.
 
“선수시절에 타이 선 남에서 외국인 선수로서 플레이 한 적이 있습니다. 스페인 선수 1명, 아시안 쿼터 1명 중 한 명으로 활동 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선수 추천 및 교류와 관련해서 베트남으로 부터 연락이 자신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비록 대리인으로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동료로서 도움을 주고 받고 있던 상황에서 이번에는 대회 측에서 베트남의 클럽을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고 이를 통해 타이 선 남 여성팀 출전을 주선하게 되었습니다.
모처럼 방문하는 상황에서 팀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참가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같이 대동하게 되었습니다. “
 

그가 생각하는 일본풋살이 강해진 이유는?

 
이나바 코타로 선수가 처음으로 일본풋살국가대표로 선발된 2004년 AFC 선수권 당시 일본의 풋살은 비록 준우승을 차지하며
FIFA월드컵에 진출했지만, 당시의 일본대표가 마주하던 세계의 벽은 생각보다 높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국내의 풋살환경도 지금에 비해서 좋은 편도 아니었다.
 
“일본의 풋살은 자신이 2004년에 처음으로 AFC대회에 참가하여 초창기 대표생활을 하던  2004, 2005, 2006년도 AFC대회는 일본 리그가 없었고 간사이, 간토리그등 지역리그 밖에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프로팀도 없었고 쉽지 않은 환경이었으며, 2000년 월드컵에도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다들 힘들어 했지만, 이를 통해 심기일전 하면서2004년에 월드컵 진출에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선수, 스텝은 더 발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였고, 풋살의 환경이 더 나이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아시아 강팀이었던 이란에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해야 할일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일본의 풋살의 환경을 개선 할 필요도 있었고 경기 수도 늘려야 할 필요도 있으며 전국리그의 필요성 등 여러의견을 선수들은 물론 스탭 들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염원이 일본축구협회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일본축구협회에서도 해보자는 의견으로 나아갑니다.
이와 함께 전국리그의 필요성을 미디어에서도 알려나갔습니다.
선수, 미디어, 스탭의 힘이 모인 것은 물론 일본축구협희의 힘이 더해지면서 전국리그가 만들어 지고
이로부터 외국인 선수가 들어오고 실력있는 외국인 감독이나 코치도 들어오게 되어서, 풋살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3 아시안컵 결승에서 이란을 꺽고 우승한 일본풋살대표팀

이처럼 선수, 스탭, 미디어, 행정이 하나가 되어 진행된 일본풋살환경의 변화는 세계풋살과의 보이지 않는 벽을 넘차 무너뜨려 갔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세계적인 팀, 선수와의 경기를 정기적으로 경험하면서 브라질, 스페인, 포르투갈과의 경기 할 때에 10점차로 지던 격차를 점차 좁혀나갔습니다.
 
“처음에 강팀과 경기를 할 때 상대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어? 무슨일 이 있었지?)하는 사이에  실점을 허용하는 일이 있었지만
선수, 지도자가 리그, 평가전에서 매번 경험하고 익숙해 지며 상대의 의도를 더 알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선수 스스로도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지속되면서 점수 차이도 좁혀지게 되었고 이제는 2, 3점차 또는 비기는 정도의 실력으로까지 올라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본 풋살의 발전은 일본축구협회등 위의 행정이 일방적으로 환경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선수, 스탭과 미디어 등 모두가  같이 함께 만들어간 느낌이었다고 그 동안의 경험을 회상하였다. 
  

이나바 코타로에게 풋살이란?

 인생의 기둥
 
“ 스스로의 인생에서 기둥이라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대회, 풋살의 분위기를 올리기 위해서 선수로서 노력해 왔으며,
지금은 은퇴하여 다른 각도에서 풋살의 인기를 올리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